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가죽 장갑을 무심하게 벗어 던지고 건반을 내리치기 시작하면, 객석의 여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그가 쓰다 버린 녹색 찻잔의 찌꺼기를 얻기 위해 육탄전을 벌였고,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구하기 위해 귀족 부인들이 보석을 아낌없이 내던졌습니다. 20세기 록스타들의 열광적인 팬덤 현상을 19세기 중반에 이미 완벽하게 재현했던 인물, 클래식 음악사상 최초의 아이돌이자 ‘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입니다.
그는 피아니스트의 자세마저 바꾸어 놓았습니다. 관객에게 등만 보여주던 연주 자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잘생긴 옆모습을 보여주며 연주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오케스트라 없이 오직 피아노 한 대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리사이틀(Recital)’이라는 형식을 창시한 혁신가였습니다.
그러나 무대 위의 조명이 꺼진 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뒤편에 홀로 남겨진 리스트의 영혼은 늘 고독과 회의감으로 멍들어 있었습니다. 대중의 가벼운 환호에 피로감을 느끼며 평생 영원한 구원과 영혼의 심연을 탐구했던 거장, 리스트의 불꽃 같으면서도 쓸쓸했던 삶과 그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메시지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의 탄생, 그리고 서커스 단원이 된 천재
1811년 헝가리의 도보리안(Doborján)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어릴 때부터 신들린 듯한 피아노 재능을 보였습니다. 9세 때 이미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비엔나에서 체르니와 살리에리에게 음악을 배웠고, 소년 리스트의 연주를 들은 베토벤이 무대로 올라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는 ‘베토벤의 세례’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청년 리스트를 진정으로 자극한 것은 이탈리아의 귀신 같은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연주였습니다. 1832년 파리에서 파가니니의 초현실적인 연주를 목격한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고 방에 틀어박혀 하루 10시간이 넘는 혹독한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선언했습니다. "바이올린에 파가니니가 있다면, 피아노에는 내가 있겠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초절기교 연습곡들과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였습니다. 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건반을 날아다니는 그의 연주에 유럽 전역은 ‘리스토마니아’라는 광풍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계속되는 투어와 화려한 파티, 그리고 대중들의 말초적인 환호는 서서히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귀족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고도의 서커스 단원’처럼 느껴졌습니다. 박수갈채가 커질수록 그의 내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차가운 허무함과 영적인 굶주림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2. 끊어진 결혼의 약속, 그리고 가슴에 묻은 자식들
리스트의 화려한 여성 편력 이면에는 평생을 지배한 지독한 사랑의 아픔과 상실의 비극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랑은 다구 백작부인(Marie d'Agoult)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신분과 가정이 있던 다구 백작부인과 리스트는 모든 사회적 지탄을 뒤로하고 스위스로 야반도주를 감행했습니다. 이 뜨거웠던 사랑의 도피 시절에 리스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피아노 선율로 옮긴 위대한 조곡 《순례의 해(Années de pèlerinage)》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불타오르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비극적인 이별로 끝을 맺었습니다.
더 큰 상처는 자식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다구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 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딸 블란딘이 26세의 나이로 출산 중 사망했고, 촉망받는 천재 음악가였던 막내아들 다니엘마저 20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화려한 황제의 왕관을 썼던 리스트였지만, 자식의 차가운 주검 앞에서는 그저 눈물 흘리는 나약한 아버지일 뿐이었습니다.
이후 리스트는 지적이고 독실한 폴란드 귀족 부인 카롤린(Carolyne zu Sayn-Wittgenstein)을 만나 진정한 안정을 찾고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카롤린의 막대한 재산을 노린 러시아 황실과 교회 보수파의 집요한 방해와 혼인 무효 소송 등으로 인해 두 사람의 결혼은 식을 올리기 직전에 영원히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함도 그의 지친 영혼과 깨진 마음을 치료해 주지 못했습니다.
3. 황제, 화려한 왕관을 벗고 검은 사제복을 입다
잇따른 실연과 소중한 자식들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절망을 겪은 리스트는 마침내 50대의 나이에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평생 누려왔던 세속의 화려한 명예와 부, 대중의 박수를 모두 내려놓고 이탈리아 로마의 수도원으로 기거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1865년, 프란치스코 회의 소품품(Minor Orders)을 받고 부사제(Abbé)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온 세상을 쥐고 흔들던 피아노의 황제가 머리를 깎고 검은 사제복을 입은 채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제가 된 리스트의 후반기 삶은 지극한 ‘나눔’과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전 유럽에서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대규모 자선 콘서트를 열어 이재민들을 도왔습니다. 또한, 수많은 젊은 음악가(안톤 루빈시타인, 모리스 라벨 등)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로 가르쳤습니다.
특히 당대 음악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던 사위 리하르트 바그너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자신의 명성과 돈을 아낌없이 지원하여 바그너가 위대한 음악극들을 완성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평생 손가락 끝으로 세상을 지배했던 거장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타인을 헌신적으로 돕는 삶 속에서 마음의 완전한 안식과 영혼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4. 리스트가 현대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리스트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과 그의 입체적인 음악 세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합니다.
① 박수갈채 뒤에 숨겨진 '내면의 가치'를 찾는 법
리스트는 젊은 시절 누구나 선망하는 부와 인기, 명예의 정점에 서 보았지만 그것이 주는 영혼의 공허함을 정직하게 대면했습니다. 끝없는 대중의 인기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리스트는 "가장 화려한 순간일지라도 영혼의 중심을 잃지 말고,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찾아 떠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준엄한 메시지를 그의 삶으로 웅변합니다.
② 나눌수록 커지는 거인의 위엄,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는 음악사에서 가장 질투가 없는 작곡가였습니다. 라이벌이었던 쇼팽의 음악적 가치를 세상에 가장 먼저 알린 이도 리스트였고, 가난한 슈만 부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도 그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재능과 영향력을 타인을 빛내는 데 사용했던 리스트의 관대함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어른의 품격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③ 달콤한 꿈속의 아늑한 평온, 《사랑의 꿈 (Liebestraum)》
원래 프레이리그라트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에 곡을 붙인 가곡이었던 <사랑의 꿈 3번>은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되며 불멸의 치유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의 감미롭고 포근한 선율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은 현대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봄눈 녹이듯 사르르 녹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송가입니다.
평생 전 유럽의 환호성을 몰고 다녔던 슈퍼스타였으나, 마지막 순간에는 허름한 사제복 한 벌만을 걸친 채 "주여, 제 영혼을 받으소서"라며 조용히 눈을 감았던 위대한 거장, 프란츠 리스트.
문득 겉포장된 나의 삶에 깊은 허무함이 밀려오거나, 나를 증명해야 하는 매일의 일상에 영혼이 지쳐버린 밤이 찾아온다면, 리스트의 《위로(Consolation) 3번》이나 《사랑의 꿈 3번》을 가만히 감상해 보세요. 화려한 건반의 폭풍을 모두 잠재운 뒤, 가장 정결하고 순수한 목소리로 당신의 지친 어깨를 안아주는 거장의 깊고 숭고한 영혼의 숨결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