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뒹구는 가을의 끝자락이나 살을 에어내는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왠지 모르게 나직하고 애잔한 선율이 그리워진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작곡가의 멜로디와 만나게 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시린 어깨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선율, 바로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음악입니다.
그가 남긴 《아베 마리아》, 《세레나데》, 연가곡 《겨울 나그네》 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들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들을 만들어낸 슈베르트의 실제 삶은 지독한 가난과 지병, 평생 제 집 한 칸 가져보지 못한 고독한 '방랑'의 연속이었습니다. 31년이라는 너무나도 짧은 생애 동안 그가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애환과,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피워내 현대인들에게 전해준 위대한 유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 학교 선생님이 싫었던 음악 천재의 가난한 홀로서기
1797년 오스트리아 빈의 변두리 리히텐탈에서 가난한 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난 슈베르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맑은 미성 덕분에 빈 궁정 합창단(오늘날 빈 소년 합창단)의 단원으로 뽑혀 황실 음악 교육을 받았고, 당대 최고의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직접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0대 후반, 가혹한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합창단을 떠나야 했던 슈베르트는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에 섰습니다. 엄격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 같은 배고픈 예술 대신 안정적인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를 강요했습니다. 슈베르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교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마음속 깊이 끓어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교실에 앉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을 받아 적기에 바빴던 그는 결국 3년 만에 교사직을 던지고 무작정 빈의 거리로 나섰습니다. 안정적인 생계의 끈을 스스로 잘라내고, 오직 음악만을 믿고 거친 세상으로 홀로서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2. 내 집도, 내 피아노도 없었던 방랑자, 그리고 '슈베르티아데'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슈베르트는 평생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궁정 음악가로 자리 잡지도 못했고, 돈을 버는 사업 수완이나 사교성도 부족했습니다. 평생을 살면서 자기 소유의 집 한 칸은커녕, 작곡가에게 심장과도 같은 피아노 한 대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아끼던 ‘친구들’ 덕분이었습니다. 시인, 화가, 성악가,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젊은 예술가 모임은 돈이 없는 슈베르트에게 번갈아 가며 잠자리를 제공하고 밥을 사주었습니다. 그들은 밤마다 모여 슈베르트가 새로 쓴 곡을 연주하고 시를 읊으며 밤을 지새웠는데, 이 예술가들의 따뜻한 사랑방 모임을 우리는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슈베르트의 밤)'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사랑도 그의 외로움을 완전히 메워주지는 못했습니다. 슈베르트는 평생 지독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지독한 가난 탓에 사랑했던 여인 테레제 그로브와의 결혼마저 좌절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는 늘 많은 친구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정작 홀로 남겨진 밤에는 잉크가 얼어붙는 차가운 단칸방에서 슬픔을 곱씹으며 악보를 그려 나갔습니다.
3. 병마의 습격, 그리고 죽음의 길목에서 쓴 가슴 저린 역작 《겨울 나그네》
20대 중반인 1822년, 슈베르트에게 치명적인 불행이 찾아옵니다. 당시에는 불치병에 가까웠던 성병인 '매독'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에 발진이 돋아나는 육체적 고통과 소외감 속에서 슈베르트는 자신이 결코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 절망의 가장 어두운 심연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입니다.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이 24개의 연가곡은 사랑에 실패한 한 청년이 눈보라 치는 차가운 겨울 길을 정처 없이 방랑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특히 다섯 번째 곡인 <보리수(Der Lindenbaum)>는 한국인들에게도 가곡으로 매우 친숙한 곡이지만, 이 곡을 쓸 당시 슈베르트는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내 삶을 송두리째 갈아 넣은 무서운 노래들을 들려주겠다"라며 이 곡들을 연주했고, 너무나 쓸쓸하고 차가운 음악적 정서에 친구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1827년, 자신이 평생 우상으로 삼았던 베토벤의 장례식에 참석해 운구를 도왔던 슈베르트는 그로부터 불과 1년 뒤인 1828년 11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기 직전 "베토벤의 옆에 묻어달라"던 그의 마지막 소망대로, 그는 현재 빈 중앙공원의 베토벤 묘지 바로 옆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4. '숭어'가 아닌 '송어'의 비밀, 그리고 600곡의 가곡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슈베르트의 노래 중 하나는 바로 <숭어>로 알려진 피아노 5중주 및 가곡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곡의 진짜 이름은 바다 고기인 숭어가 아니라 맑은 계곡물에 사는 민물고기인 '송어(Die Forelle)'라는 점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오랫동안 교과서에 실려 굳어진 해프닝이지만, 이 경쾌하게 물 위를 튀어 오르는 송어의 멜로디는 슈베르트가 가졌던 삶에 대한 맑은 동심과 순수한 열정을 가장 잘 대변해 줍니다. 그는 시 한 편을 읽으면 2~3분 만에 그에 어울리는 천상의 멜로디를 즉석에서 그려낼 만큼 멜로디의 화수분이었습니다. 31년의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성악 가곡만 600곡이 넘는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창작에 매달렸는지를 보여줍니다.
5. 슈베르트가 현대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슈베르트의 음악은 매일 바쁜 일상을 살아내며 어딘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묵직한 위로의 온기를 전해줍니다.
① 방랑하는 삶을 긍정하는 '연대와 공감'
슈베르트 음악의 가장 큰 주제는 ‘방랑(Wandering)’입니다. 많은 현대인이 사회적 기준에 끼워 맞춰 살아가면서도 가슴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방랑벽을 품고 살아갑니다. 슈베르트는 "괜찮다, 나 역시 평생 길 위의 방랑자였고 고독했다"라며 음악을 통해 우리 영혼의 상처를 따뜻하게 다독여 줍니다.
② 비워둠으로써 완성되는 아름다움, 《미완성 교향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은 오직 2악장까지만 완성되어 《미완성 교향곡》이라 불립니다. 보통 교향곡이 4악장으로 구성되는 것에 비하면 분명 '미완성'이지만, 이 곡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완벽한 예술성을 자랑합니다. 끝까지 채우지 않아도, 미완성인 채로도 그 자체로 지극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슈베르트의 메시지는 늘 무언가를 완벽하게 끝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큰 위안을 줍니다.
평생 자신의 피아노 한 대 없이 남의 방 한구석에서 빌린 펜으로 불후의 명곡들을 써 내려갔던 소년 같은 거장, 프란츠 슈베르트.
유독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거나,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두려움이 밀려오는 밤이 있다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이나 가곡 《밤과 꿈(Nacht und Träume)》을 가만히 들어보세요. 쓸쓸한 방랑의 길목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는 거장의 따스한 멜로디가, 당신의 얼어붙은 외로움을 가만히 녹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