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섬세하며, 가장 시적인 소리를 듣고 싶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이 작곡가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됩니다. 바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입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 피아니스트 리스트로 대표되는 초절기교의 화려함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쇼팽은 오직 ‘피아노’라는 단 하나의 악기에 집중하여, 그 건반 위에서 인간 내면의 가장 은밀한 슬픔과 환희, 그리고 조국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시처럼 노래했습니다.
평생을 따라다닌 지독한 병마와 고향을 잃은 망명객의 외로움 속에서도 기어코 세상에서 가장 영롱한 음악을 피워냈던 쇼팽. 그의 애달픈 삶의 여정과 그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유산을 따라가 봅니다.
1. 은잔에 담긴 조국의 흙, 그리고 영원한 망명객의 눈물
1810년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의 젤라조바 볼라(Żelazowa Wola)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은 어릴 때부터 ‘모차르트의 재림’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피아노 신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청년 쇼팽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음악의 도시 빈으로 떠나던 1830년 말, 그의 운명을 뒤흔든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하여 고향 바르샤바에서 혁명(11월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쇼팽은 조국으로 돌아가 총을 들고 싸우려 했으나, "너는 음악으로 조국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려라"라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만류에 비통한 마음으로 파리(Paris)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이때 그의 스승인 엘스너는 쇼팽에게 폴란드의 흙을 가득 담은 은잔(Silver Urn)을 선물했습니다. 쇼팽은 이 은잔을 평생의 보물로 삼아 머리맡에 두고 살았으며, 안타깝게도 이 떠남은 그의 인생에서 고향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파리에 정착한 쇼팽은 조국의 패망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리며 거칠고 격정적인 곡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연습곡 작품 10의 12번 <혁명(Revolutionary)>은 조국 폴란드의 비극에 분노한 쇼팽이 건반을 부술 듯한 기세로 써 내려간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파리 사교계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마음은 늘 차가운 이방인이자 영원한 망명객이었고, 그의 피아노 선율에는 늘 조국 폴란드를 향한 지독한 향수(鄕愁)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2. 45kg의 가냘픈 몸을 지탱해 준 단 하나의 사랑, 조르주 상드
쇼팽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빛과 그림자는 당대 프랑스 문단을 뒤흔든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남장(男裝)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거침없이 글을 쓰던 진취적인 성향의 상드와, 지극히 내성적이고 귀족적이며 병약했던 쇼팽의 사랑은 당대 파리 사교계의 가장 뜨거운 가십이었습니다.
쇼팽은 평생을 만성 폐결핵과 천식에 시달려 성인이 되어서도 몸무게가 45kg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신체가 극도로 나약했습니다. 상드는 그런 쇼팽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쇼팽의 요양을 위해 스페인의 마요르카(Mallorca) 섬에 있는 발데모사 수도원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비바람이 치고 으스스한 수도원의 겨울은 쇼팽의 폐 질환을 악화시켰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고통의 나날 속에서 그의 창작력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빗방울 전주곡(Raindrop Prelude)>을 비롯한 24개의 전주곡집을 완성했습니다. 비록 성격 차이와 오해로 인해 9년 만에 비극적인 결별을 맞이했지만, 상드와 함께했던 기간은 쇼팽이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위대한 음악들을 생산해 낼 수 있었던 황금기였습니다.
3. "내 몸은 파리에 묻히더라도, 내 심장은 폴란드로 보내주오"
상드와의 결별 이후,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쇼팽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더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그는, 1849년 10월 17일, 파리의 아파트에서 동생 루드비카와 몇몇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9세라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임종 직전 마지막 소원은 참으로 절절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내 몸은 이곳 파리에 묻히더라도, 내 심장만큼은 꺼내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내 조국 폴란드 바르샤바에 묻어다오."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육신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그의 심장은 동생에 의해 알코올 병에 담겨 비밀리에 폴란드로 운반되었습니다. 쇼팽의 심장은 현재 바르샤바의 성십자가 교회(Holy Cross Church) 지하 석주 아래에 안치되어 있으며, 세상을 떠난 지 약 180년이 지난 지금도 조국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4. 쇼팽이 현대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쇼팽의 음악은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약함을 숨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정직하고 부드러운 영혼의 치유를 선물합니다.
① 나약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법
쇼팽은 리스트처럼 건반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압도적인 완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육체가 너무나 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쇼팽은 자신의 나약함을 슬퍼하는 대신,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가장 가볍고 미세한 터치와, 성악의 벨칸토 창법을 피아노에 도입한 유려한 멜로디 라인을 개척했습니다. 그는 "꼭 강하고 웅장해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약하고 섬세한 속삭임이 때로는 가장 강한 감동을 준다"는 큰 가르침을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② 고독한 밤을 품어주는 위로, 《야상곡(Nocturne)》
조용하고 깊은 밤의 정취를 노래한 쇼팽의 야상곡들은 지친 현대인들의 뇌와 심장을 가장 아늑하게 이완시켜 주는 최고의 ‘밤의 음악’입니다. 특히 <야상곡 2번 E플랫 장조>의 감미로운 멜로디는 불안과 불면으로 잠 못 드는 현대인들에게 마치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듯 따뜻하고 아늑한 평온함을 선사합니다.
③ 내면에 숨겨진 뜨거운 열정을 깨우는 《발라드》와 《폴로네이즈》
쇼팽이 조국을 그리워하며 쓴 <영웅 폴로네이즈>나 <발라드 1번 G단조>는 고요함 속에 숨겨진 거대한 에너지의 폭발을 보여줍니다. 삶의 정체기에 갇혀 열정을 잃어버렸거나, 가슴속에 맺힌 억울함과 슬픔을 분출하고 싶을 때, 쇼팽이 건반 위에 쏟아낸 드라마틱한 전개는 우리에게 새로운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평생을 창백한 얼굴로 기침을 토해내면서도, 은잔에 담긴 조국의 흙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건반 위에 적어 내려갔던 낭만주의의 거장, 프레데리크 쇼팽.
유독 외로움이 깊어지거나 가슴 한구석에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는 밤이 찾아온다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로만체》나 《이별의 곡(Etude Op.10 No.3)》을 가만히 감상해 보세요. 조국을 잃고 눈물짓던 젊은 이방인의 애절한 선율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당신의 쓸쓸한 마음을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게 안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