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듣는 대중음악부터 웅장한 영화 음악, 그리고 화려한 클래식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모든 음악에는 정형화된 ‘규칙’과 ‘길’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소리의 길을 닦고, 음악이라는 예술의 뼈대와 기초를 완벽하게 정립한 인물이 있습니다. 후대의 천재 작곡가 베토벤이 "그는 시냇물(독일어로 바흐)이 아니라 거대한 바다(Meer)라고 불려야 마땅하다"라며 극찬했던 거장,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오늘날 ‘음악의 아버지’라는 거창한 칭호로 박제되어 있어 우리에게는 다소 딱딱하고 엄숙한 종교 음악가로만 느껴지기 쉽지만, 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한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과,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깊은 애환이 녹아 있습니다. 소리의 우주를 완성한 바흐의 인간적인 삶과 그가 현대인에게 남긴 유산을 조명해 봅니다.
1. 가문의 숙명과 비극 속에서 피어난 소년의 집념
1685년 독일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태어난 바흐는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당시 ‘바흐’라는 성씨 자체가 ‘거리의 악사’를 뜻하는 대명사로 쓰일 정도였으니, 그에게 음악은 선택이 아닌 삶이자 숙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 바흐의 출발선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0세가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된 그는 큰형의 집에서 얹혀살며 음악을 배웠습니다. 음악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엄청났던지, 형이 아끼는 비밀 악보를 몰래 베껴 쓰기 위해 한밤중에 달빛에 의지해 6개월 동안 필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무리한 필사 작업은 노년에 그가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는 비극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청년이 된 바흐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 실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그의 삶은 결코 화려한 스타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독일의 작은 도시들(아른슈타트, 뮐하우젠, 바이마르, 쾨텐, 라이프치히)을 전전하며 궁정 악사, 혹은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일했던 ‘성실한 음악 공무원’에 가까웠습니다.
2. 20명의 자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 가장의 애환
바흐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가족’입니다. 그는 평생 두 번 결혼하여 무려 20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중 절반인 10명의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첫 번째 아내였던 마리아 바르바라는 바흐가 주군을 따라 외지 출장을 다녀온 사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와 차갑게 식어버린 아내의 무덤을 마주했을 때 바흐가 느꼈을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바흐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겨진 아이들을 키우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2의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했고, 매주 교회의 예배에 쓸 새로운 칸타타를 공장처럼 찍어내듯 작곡해야 했습니다.
특히 인생의 후반기를 보낸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27년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보수적인 교회와 시의회는 바흐의 음악이 "너무 화려하고 종교적이지 못하다"라며 사사건건 간섭했고, 그의 봉급을 깎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자녀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바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음악을 작곡하는 부업을 뛰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듣는 바흐의 완벽하고 정교한 음악들은, 이렇듯 매일의 고단한 삶과 치열한 생존 투쟁 속에서 탄생한 위대한 산물입니다.
3. 철저히 잊혀진 거장, 100년 만의 부활
오늘날 바흐는 음악의 신처럼 추앙받지만, 1750년 그가 뇌졸중과 실명으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흐의 음악을 "지나치게 복잡하고 딱딱한 옛날 음악"으로 치부했습니다. 그의 악보들은 푸줏간의 고기 포장지로 쓰이거나 헐값에 팔려 나갔고, 그의 이름은 음악사에서 서서히 잊히는 듯했습니다.
그를 무덤 속에서 깨운 인물이 바로 거장 시리즈 1탄에서 언급했던 펠릭스 멘델스존이었습니다. 바흐가 사후 79년이 지난 1829년, 청년 멘델스존은 우연히 발견한 바흐의 악보를 가지고 <마태 수난곡>을 지휘하여 무대에 올렸습니다. 거대하고도 웅장한 소리의 서사에 당시 유럽 음악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흐의 음악들이 비로소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그가 다져놓은 대위법과 화성학의 기초 위에서 낭만주의 음악이 화려하게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4. 바흐가 현대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바흐의 음악은 종교적 경건함을 넘어, 현대인들의 지친 영혼을 치유하고 이성을 깨우는 독보적인 유산을 담고 있습니다.
① 마음에 완벽한 질서를 부여하는 ‘무반주 첼로 조곡’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은 첼로라는 악기 한 대로 인간의 모든 감정과 영혼의 깊이를 표현해 낸 걸작입니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반주 없이 묵직한 첼로 현의 울림만으로 채워지는 이 음악은, 정보의 홍수와 소음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깊은 침묵과 내면의 평화를 선물합니다. 카살스나 로스트로포비치 같은 거장들이 인생의 위기 때마다 이 곡을 연주하며 구원을 얻었다고 고백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② 피아노의 성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바흐는 모든 조성을 공평하게 연주할 수 있는 ‘평균율’의 법칙을 활용해 조화로운 건반 음악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이 곡집은 후대의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이 매일 아침 손을 풀고 영감을 얻기 위해 연주했던 음악가들의 바이블입니다.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바흐의 선율은 인간의 두뇌를 자극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③ 영혼을 맑게 씻어내는 ‘G선상의 아리아’
원래 <관현악 모음곡 3번>의 일부였던 이 곡은 바이올린의 가장 낮고 은은한 현인 ‘G선’ 하나만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되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끝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유연하게 이어지는 멜로디는 불안과 우울감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의 마음을 가만히 보듬어주는 따뜻한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흐는 평생 자신의 음악 악보 끝에 항상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느님께 영광을)이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위대한 질서와 순리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겸손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인생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고, 삶의 질서가 무너져 내린 것처럼 혼란스러운 날이 있다면 바흐의 오르간 음악이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틀어보세요. 250년 전, 20명의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묵묵히 밤을 새우며 악보를 그리던 한 성실한 아버지가 구축해 놓은 완벽한 위로의 세계가 당신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