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어지럽게 뒹구는 쓸쓸한 늦가을의 오후, 혹은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 왠지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를 품은 멜로디가 그리워진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작곡가의 음악과 마주하게 됩니다. 화려하게 반짝이기보다 낙엽이 쌓이듯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음악, 바로 ‘쓸쓸한 낭만주의자’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입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중후반은 리하르트 바그너와 프란츠 리스트로 대표되는 ‘신독일악파’가 극적인 화성과 거대한 오케스트라, 화려한 표제 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들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바흐와 베토벤이 다져놓은 고전주의의 순수한 형식미와 엄격한 질서를 묵묵히 고수했습니다.
세상은 그를 ‘보수주의자’라 부르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 밑바닥에는 그 어떤 급진주의자보다 뜨겁고 애틋한 인간적 정열과 지독한 고독이 서려 있었습니다. 평생 고독을 진정한 친구로 삼아 우아한 음악적 우주를 건설한 브람스의 일생과, 그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따스한 유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 함부르크 홍등가의 피아노 소년, 비극을 우아함으로 승화하다
1833년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람스의 출발은 그리 화려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야외 음악가였고, 집안 형편은 늘 쪼들렸습니다. 소년 브람스는 어린 나이부터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함부르크의 어두운 항구 근처 선술집이나 홍등가 구역의 매춘업소에서 밤새 피아노를 쳐야 했습니다.
취객들의 거친 고함과 자욱한 담배 연기, 그리고 삶의 가장 어둡고 날것 그대로의 비극들을 매일 밤 목격했던 이 충격적인 유년기의 경험은 예민했던 소년의 마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그는 평생 대인관계에서 극도로 신중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게 되는 정서적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브람스는 피아노 건반 위에서 자신만의 성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는 거친 소음 속에서도 오직 음악의 순수함에 몰두하며 내면의 단단한 맷집과 깊이를 묵묵히 다져나갔습니다.
2. 평생을 지배한 단 하나의 불꽃, 클라라 슈만을 향한 헌신
스무 살의 무명 청년 브람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운명적인 만남은 1853년에 이루어집니다.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주선으로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브람스의 자작곡 연주를 들은 슈만은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이 발행하던 음악 잡지에 "이 청년이야말로 시대가 기다려온 진정한 음악적 메시아"라며 극찬하는 글을 실어 브람스를 단숨에 음악계의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브람스에게 평생의 등대이자 가장 큰 고뇌가 된 존재가 나타납니다. 바로 슈만의 아내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었습니다. 브람스는 자신보다 14세 연상이었던 클라라의 지적이고 우아한 모습, 그리고 깊은 예술적 영혼에 순식간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듬해 슈만이 정신병의 악화로 라인강에 투신하고 정신병원에 갇히는 비극이 발생하자, 브람스는 절망에 빠진 슈만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슈만 대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가계를 도왔고, 클라라의 곁을 묵묵히 지켰습니다.
1856년 슈만이 쓸쓸히 세상을 떠난 후, 두 사람은 마침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브람스는 결혼이라는 세속적인 결합 대신, 평생 동안 클라라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술적 동지이자 영혼의 구원자로 남는 기묘하고도 숭고한 선택을 내립니다.
그는 평생 다른 여인을 사랑하지 않았고, 오직 클라라만을 가슴에 품은 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웠지만 동시에 가장 차갑게 절제되었던 이 불멸의 사랑은, 브람스 음악 속에 흐르는 아련하고 애틋한 절제미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3.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산, 21년의 산고 끝에 태어난 '제1번 교향곡'
브람스에게는 평생을 짓누르던 거대한 영적 거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음악의 성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었습니다. 슈만이 그를 '베토벤의 정통 후계자'로 선언한 순간부터, 세상은 브람스에게 완벽한 교향곡을 내놓으라며 끊임없이 압박했습니다.
브람스 스스로도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늘 작아지는 자신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는 한 편지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뒤로 베토벤이라는 거인이 쿵쾅거리며 걸어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하는 심정을 자네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걸세."
완벽주의자였던 브람스는 베토벤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교향곡을 쓰기 위해 30대 시절부터 구상하기 시작해, 무려 2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듬고 고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하여 1876년, 그의 나이 마흔셋이 되어서야 마침내 완성된 《교향곡 제1번 C단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청난 찬사를 받았습니다. 당대의 위대한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곡을 두고 "이것은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이다!"라며 감탄했습니다. 베토벤의 비장한 투쟁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면서도 브람스 특유의 쓸쓸하고 따뜻한 낭만적 색채를 완벽히 녹여낸,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산고의 결실이었습니다.
4. 브람스가 현대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브람스의 은근하고 묵직한 음악들은 자극적이고 빠른 템포에 피로해진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에 깊은 숨구멍과 정신적 안식을 선물합니다.
① 지친 영혼을 포근하게 재워주는 마법, 《자장가(Wiegenlied)》
전 세계 모든 부모와 아기들이 듣고 자란 아름다운 <자장가>는 원래 브람스가 사랑했던 옛 연인이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기 위해 선물한 곡입니다. 그의 상처받은 유년기와 지독한 고독을 겪었기에, 타인을 축복하는 그의 선율은 그 어떤 음악보다 따스하고 깊은 아늑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안과 불면의 밤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이 곡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엄마의 품이 되어 줍니다.
② 가을의 우수와 고독의 극치, 《교향곡 제4번》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4번은 그의 예술적 깊이가 절정에 달한 명작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인 정서와 바흐 시절의 고풍스러운 변주 양식(샤콘느)을 결합한 이 곡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인간이 느끼는 쓸쓸함과 체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숭고한 영혼의 가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 뿜어내는 묵직한 비장미는 삶의 권태나 상실감으로 슬퍼하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하고도 정직한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합니다.
③ 절제와 성숙이 보여주는 위대한 '거리두기'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소유하기 바쁜 현대의 인스턴트식 사랑에 깊은 경종을 울립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상대를 파괴하지 않고 영원히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평생의 삶과 편지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의 음악에 깃든 우아한 여백은 바로 이 ‘숭고한 절제’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1896년 5월, 브람스가 그토록 사랑했던 마음의 안식처 클라라 슈만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보를 듣고 임종을 지키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달려갔으나, 열차의 착오로 장례식이 끝난 뒤에야 묘지에 도착한 노장 브람스는 무덤가에 주저앉아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11달 뒤인 1897년 4월, 브람스 역시 간암이 악화되어 평생의 절친이었던 클라라의 뒤를 따라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평생을 오직 클라라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외고집 거인의 애달프고도 지고지순한 마침표였습니다.
매일매일 치열하게 버텨내는 나의 삶이 유독 건조하고 춥게 느껴지는 날, 혹은 내면의 고독을 우아한 온기로 채우고 싶은 밤이 찾아온다면 브람스의 《인터메조(Intermezzo) 작품 118의 2번》을 조용히 들어보세요.
화려한 기교 대신 가슴 깊은 곳을 가만히 두드리는 건반 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고독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끝까지 지켜냈던 위대한 거장의 고결한 위로가 당신의 영혼을 가만히 보듬어 안아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