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내뿜는 웅장한 소리의 향연, 그리고 네 개의 현악기가 주고받는 긴밀한 대화의 형식. 이 세련되고 완벽한 음악 체계를 구축하여 후대의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굳건한 땅을 다져준 인물이 있습니다. 동료 음악가들과 제자들로부터 늘 ‘파파(Papa, 아버지) 하이든’이라는 친근한 애칭으로 불렸던 거장,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입니다.
그가 남긴 온화하고 균형 잡힌 음악들만 들으면, 그의 삶이 평생 풍요롭고 평탄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하이든의 뒤편에는 지독한 가난으로 굶주려야 했던 유년기, 평생을 음악을 무시하는 악처와 살아야 했던 가슴앓이, 그리고 궁정의 음악 하인으로서 견뎌야 했던 인고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가시밭길을 오직 ‘유머와 인내’로 헤쳐 나가며 클래식의 기초를 세운 하이든의 삶과 위대한 유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 변성기라는 비극, 그리고 길 위의 굶주린 청년
1732년 오스트리아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로라우(Rohrau)에서 가난한 수레바퀴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하이든은 음악적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그의 뛰어난 미성을 발견한 친척의 도움으로 빈의 성 토마스 성당(훗날 성 슈테판 대성당) 소년 합창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그의 맑은 목소리는 비엔나 궁정의 큰 사랑을 받았지만, 가혹한 운명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0대 후반, 피할 수 없는 ‘변성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고음이 나오지 않자 성당 측은 쓸모없어진 청소년 하이든을 엄동설한의 길거리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쫓아 버렸습니다.
돈 한 푼 없이 낡은 코트 한 벌만 걸친 채 비엔나의 차가운 밤거리로 쫓겨난 하이든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남의 집 다락방을 전전하며 밤에는 길거리 악사로 노래를 부르고, 낮에는 어린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얻은 푼돈으로 겨우 빵을 사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춥고 배고픈 8년간의 방랑 생활 동안 하이든은 낙담하는 대신, 헌책방에서 구한 음악 이론 서적들을 독학하며 자신만의 음악적 내공을 묵묵히 쌓아 올렸습니다.
2. 악처와의 불행한 결혼, 그리고 30년의 외로운 창작 유배지
20대 후반, 하이든의 뛰어난 능력이 알려지면서 그는 헝가리의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귀족 가문이었던 에스테르하치(Esterházy) 가문의 부악장(훗날 악장)으로 임명됩니다. 드디어 굶주림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음악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불행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이든은 사실 한 이발사의 착하고 아름다운 셋째 딸 요제파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가 버리자, 이발사의 강요와 책임감에 못 이겨 첫째 딸인 마리아 안나(Maria Anna)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는 하이든 인생 최대의 실수이자 비극이었습니다.
마리아 안나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을뿐더러 지극히 낭비벽이 심하고 성격이 괴팍했습니다. 그녀는 남편 하이든이 밤을 새워 가며 피땀 흘려 쓴 악보들을 냄비 받침으로 쓰거나, 빵을 포장하는 종이, 심지어 머리를 마는 롤러 페이퍼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평생 아이도 없이 차가운 아내의 잔소리와 멸시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하이든은 도망치듯 음악실에 박혀 악보를 그리는 것으로 삶의 슬픔을 달랬습니다.
또한, 하이든이 일했던 에스테르하치 궁전은 비엔나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악단의 모든 단원을 관리하고 매일 새로운 곡을 연주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고립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하이든은 이 시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나를 방해하거나 방황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나는 ‘독창적(original)’이 될 수밖에 없었다."
3. 재치와 위트로 가득 찬 음악 혁신가
하이든은 꽉 막힌 궁정 생활과 불행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늘 유쾌하고 온화한 성품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음악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유머러스한 명곡들을 탄생시켰습니다.
① 교향곡 제94번 <놀람 (Surprise)>
당시 귀족들은 교향곡 연주회가 열리면 저녁 식사 후 따뜻한 공연장에서 졸기 일쑤였습니다. 하이든은 이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용하고 감미로운 2악장의 멜로디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모든 악기가 천둥이 치듯 '꽝!' 하고 엄청난 음량으로 연주하는 대목을 넣었습니다. 졸다가 깜짝 놀라 의자에서 자빠진 귀족들을 보며 하이든은 무대 뒤에서 쾌재를 불렀고, 이 곡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② 교향곡 제45번 <고별 (Farewell)>
에스테르하치 후작이 휴가철이 지났음에도 시골 궁전에 머물며 단원들을 집으로 보내주지 않자, 단원들은 가족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에 걸렸습니다. 이를 본 하이든은 아주 평화롭고 영리한 시위를 기획했습니다.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연주가 진행될 때, 악기 파트가 끝난 단원들이 하나둘씩 촛불을 끄고 악기를 챙겨 무대 뒤로 퇴장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하이든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단 두 명만 남아 쓸쓸히 연주를 마쳤습니다. 이 재치 있는 메시지를 눈치챈 후작은 크게 웃으며 다음 날 즉시 모든 단원에게 휴가를 주었습니다.
③ 현악 4중주 작품 33-3 <농담 (Joke)>
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음악이 끝난 것처럼 교묘하게 쉼표를 배치하여, 관객들이 연주가 끝난 줄 알고 박수를 치게 만드는 낚시성(?) 유머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음악을 엄숙한 종교나 품위의 도구가 아니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인간적인 소통의 창구로 만든 하이든의 성품이 잘 드러납니다.
4. 하이든이 현대인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
말년의 하이든은 런던으로 건너가 대규모 콘서트를 성공시키며 전 유럽이 추앙하는 최고의 거장으로 우뚝 섰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라는 불멸의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묵직합니다.
① 직장 생활과 고립 속에서 살아남는 '창조적 태도'
많은 현대인이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좁은 인간관계, 혹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우울감을 느낍니다. 하이든 역시 30년 동안 시골 궁전의 하인 신분으로 갇혀 끊임없이 곡을 생산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 안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아 교향곡의 틀을 완성했습니다. 갇힌 환경을 나만의 '창조적 실험실'로 바꾸는 하이든의 긍정성은 현대 직장인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됩니다.
② 굳은 마음을 녹이는 최고의 백신, '위트와 유머'
하이든의 삶은 불행한 결혼과 가난, 억압적인 귀족 사회 등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찰 법한 조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갈등을 정면 충돌 대신 부드러운 유머와 위트로 해결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명확히 전달했던 그의 지혜는,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갈등을 부드럽게 해결하는 최고의 삶의 도구입니다.
③ 완벽한 협동의 미학, '현악 4중주'
하이든이 정립한 현악 4중주(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네 명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친밀한 대화'에 비유됩니다. 어느 한 악기가 튀지 않고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며 주고받는 이 구조는, 타인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기 바쁜 소통 부재의 시대에 '경청과 협동'이 얼마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줍니다.
젊은 날 비엔나의 길거리에서 배고픔에 눈물 흘리며 바이올린을 켜던 소년은, 훗날 전 유럽의 찬사를 받으며 클래식의 거대한 뼈대를 세운 '파파 하이든'이 되었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억울하고 꽉 막힌 일들로 가슴이 답답하다면, 오늘 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착지(The Joke)'》나 《교향곡 101번 '시계' 2악장》을 들어보세요.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계태엽 같은 편안한 리듬 속에서, 삶의 슬픔조차 미소로 승화시켰던 거장의 넉넉한 품이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을 사르르 녹여줄 것입니다.